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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사지방에서 짬(그 짬 말고)을 내 짧은 근황 글을 써 봅니다.


 입대 전 시간을 드림클래스에서 내 제자들에게 바쳤고, 눈물의 작별을 한 뒤에는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미국 동부에서 소중한 추억을 쌓고는 귀국해, 설만 보내고는 공군 병 785기로 입대했네요..


 아직도 기억납니다.

2018년 2월 19일, 전날까지만 해도 쌀쌀한 날씨었지만 그 날은 유난히 맑고 따뜻했습니다.

공군 교육사에 들어가기 전 먹었던 마지막 사제 점심은 왜인지 꿀떡꿀떡 잘 넘어가더군요.

카톡 785기 오픈채팅방에서 어떤 놈이 육회 먹다 울면서 코로 육회를 뱉어냈다는 얘기에 부모님과 깔깔댔지만

이는 마음 속 심연의 답답함을 감추고 싶은 저의 소박한 흥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과 마지막 포옹을 하고 연병장에 섰을 때의 그 기분은 아직도 기억하지만 어찌 형용하기 어렵습니다.

가만히 서 있지만 왜인지 다리에는 힘이 쫙 풀리고, 머리는 하얘져 내가 살아있는지 의문이 들 지경이었습니다.

군악대의 연주와 함께 연병장을 한 바퀴 돌고 전천우로 들어갔는데, 뒤로 들리는 악기 소리가 작아지는 것이 마치...

<해리포터와 불의 잔>을 보셨습니까? 영화 마지막에 보면 해리가 미로 속으로 들어갈 때 악기 소리가 삭 조용해지고 스산해지는 장면이 있는데 문득 그것이 연상되더군요.

이후 조교들과 소대장에게 오질라게 굴러다녔는데, 끝나지 않을 6주도 마침내 끝나긴 하더군요. 수료할 때 진짜 전역하는 줄 알았습니다 ㅎ


 일반차량운전병이라 특기학교에서 수동 액센트와 프라이드를 벌벌 떨면서 운전했는데

사실 그 때 목표는 서울 대방동에 있는 자대였습니다. 집에서 지하철로 30분도 안 걸리는 그 자대.

진짜 자대 욕심이 어마어마했기에 기훈단과 특기학교에서 잠을 줄여가면서까지 공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까 보니 110여명의 같은 특기생들 중 기훈단 성적 11등, 특기학교 성적 3등. 종합하면 세 손가락 안에 들 수도 있는 그런 등수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대방동의 자대는 운전실력과 면접으로만 뽑는다고 했고, 아버지의 차를 열심히 몰았던 기억에 자신만만했지만 막상 시험은 오토가 아닌 수동으로 봤죠.

솔직히 브레이크의 부드러움 하나는 평가관 입에서 'Kia'가 튀어나오게 할 만큼 부들부들했는데 수동이 좀 불안해서 조마조마했건만...

두 명 뽑는 그 자대에 세 명 중 하나로 후보로 뽑혀 면접을 보게 됩니다!


 저 놈이 분명 떨어질거닷!! 그렇게 열심히 자기위로를 했건만 응 내가 떨어졌쥬 ㅎ

탈락하고 화장실에서 눈물까지 흘립니다.

그래도 나름 꿀이라는 자대에 지원을 했고, 4월 말에 자대배치를 받은 뒤 입대 후 8개월 가량이 지난 지금입니다.


 일병도 꺾였고 12월에 상병이라 나름 군생활 쫌 했다 아이가 그런데

전역은 20년 1월이라 아직 많...이... 멀었네요.

말년은 아마 19년 11월 말일부터 나가지 않을까 싶건만... 아직 잘 감이 안 옵니다.


 그러게 왜 3개월이나 더 긴 공군 갔냐구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도 육군 가서 까놓고 머리 굳긴 죽어도 싫었습니다!


맞습니다. 전 지금 군인입니다. 나라 지키는 군인입니다. 군복도 입고 총도 쏩니다.

그런데 평생 군인할 건 아닙니다.

전 경제학에 관심 많았던 학생이었고, 때로는 도서관에서 밤을 샜던 학생이었고, 소박한 대외활동이라도 열정 넘치게 했던 그런 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학생일 거구요.


 그래서 전 복무기간이 눈물나게 아깝습니다.

정말 피눈물나게 아깝습니다!

20대 청춘에 못해본 것 해보고 싶은 것 세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데 전역하면 24살이라는 게 처절하게 슬프고 아쉽습니다.

정말 아껴주고 싶은 여자가 있는데도 그녀를 2년 동안 홀로 있게 하고 싶지 않아 잡지 못했다가 지금 딴 남친이랑 꽁냥거리는 것도 미련 남고

그래도 제가 배우고 싶어서 들어간 경제학과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경제 하면 머릿속에 남는 게 거의 없는 것 같은 것도 열불납니다.

전역하면 내가 뭐 했다고 24살이 된다는 것도 화가 나고

이 시간 동안 군대 안 가는 사람들은 자기계발에 한창일 것이라는 사실에 좌절스럽습니다.


 그렇기에 입대 후 짧은 시간조차도 아까웠습니다.

남는 시간 동안 TV 멍하니 쳐다봐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경멸스러웠고

그랬기에 남는 시간 동안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입학 전에 주식투자에 관심 갖고 재무제표 보면서 회계에 관심이 많이 갔기에

회계사 자격증 한 번 따 보자는 생각으로 CPA 공부 시작했습니다.


 맞습니다.

군대에서 공부하면 놓치는 게 많더군요.

선후임간의 추억,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 밤새 보드게임 하고 이야기꽃 피우는 재미

그런데 도서관에서 재밌게 봤고 제가 정말 좋아하는 미생의 2권에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뭔가 하고 싶다면 일단 너만 생각해.

모두를 만족시키는 선택은 없어.

그 선택에 책임을 지라구."

무언가 선택을 한다면 다른 건 포기해야 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법이지요.

저는 딴 걸 포기하고 대신 전역 후의 미래를 본 것 같습니다.


 그 때는 나름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20년 초시 동차로 붙자는 생각으로 꽤나 열심히 달렸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뭔가 그게 많이 덜한 것 같습니다.

공부도 손에 안 잡히고 그 경멸스러운 시간 낭비를 이제는 나름 즐기는 것 같아 괴롭습니다.


 그러다가 친구가 투자했다는 기업 재무제표 한 번 보러 사지방 들어왔다가

오랜만에 티스토리에 들어와 이렇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근황을 알려봅니다.

이전 게시글을 돌아보니... 그래도 나름 열심히 살아왔던 인생이었네요.

새로운 댓글도 몇 개 눈에 띄구요.


 과연 저는 군복무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을까요?

아니, 그냥 전역하는 거 말구요.

진짜 '성공적'으로, 나름 보람차게 말이에요.


 상병 선임분이 한 분 계십니다.

언젠가 단 둘이 있을 때 한 마디 툭 던졌습니다.

"모 상병님, 진짜 빨리 전역하고 싶습니다.

이번에 전역하시는 분들 진짜 부럽습니다."


그러자 이렇게 답하시더군요.

"전역... 전역은 시간 되면 언젠가 하겠지.

난 솔직히 전역하는 사람 별로 안 부럽더라.

전역할 때 뭔가 이루고 간다면... 그런 게 대단하고 부러울 것 같아."


과연 제 전역은 남부러운 전역이 될 수 있을까요?

누구나 하는 그런 전역 말고 말입니다.



2018.10.06

저녁 8시에 사지방에서

일병 고글 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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