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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요일의 글쓰기 수업 교수님 출석을 부르시고는, 대뜸 이렇게 외치셨다. 갑작스러운 교수님의 말씀에 동기들은 어리둥절했고, 일부는 내심 수업이 끝나기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나도 무척이나 당황스러웠지만, 우선 말씀대로 옷을 챙겨입고는 가방을 챙겨 책상 위에 올렸다.


"지갑이랑 핸드폰은 꺼내서 같이 책상 위에 올려."


이어서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갑과 핸드폰은 왜 올려놓으라고 하시는 걸까? 설마 저번처럼 명상을 시키시려는 것일까? 혹은 우리들의 심리 테스트의 일종이었던 것일까?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학생들이 모두 준비를 마쳤고, 일부는 집에 갈 생각에 싱글벙글하고 있었다. 이어서 교수님은 화이트보드에 다음과 같이 쓰셨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글쓰기'


'아무것도'까지만 보고는 실소가 터졌다. 설마 2시간의 수업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게 앉혀두시려는 작정이셨던 것인가? 그러나 나머지 글자를 보고는 나의 당황스러움은 두 배로 늘어났다. 글을 쓰려면 손을 놀려야 할 텐데, 설마 머릿속으로 글쓰기를 외워서 하게 시키시려는 작정이셨던 것일까?


그러나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교수님은 1시간 반 동안 강의실을 나가 멍을 때리다 오라고 말씀하셨다. 구걸을 해도 좋고, 다른 수업에서 도강을 해도 좋다는 투의 말씀이었다. 


세상에... 매일같이 고등학교의 교실과 꼭 닮은 강의실에 앉아, 펜을 굴려야 했던 그 수업은 어딜 갔단 말인가? 흥분됨과 짜릿함, 기대감, 동시에 당황스러움이 교차했다. 강의실을 나가 동기들은 건물의 옥상에 올라간다고 말을 하였지만, 입을 놀리기 싫었던 나는 그들을 뒤로 하고 캠퍼스를 따라 내려갔다.


 가을 낙엽이 흩날리는 캠퍼스를 홀로 걸으며, 문득 커피가 마시고 싶어졌다. 그러나 아차! 지갑은 내 뒤에 있는 강의실 책상 위에 홀로 있었다. 아니, 이어폰과 음악이 담긴 핸드폰과 함께 있었다. 돈 없이 배고픔을 알라는 교수님의 말씀. 하지만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도 돈이나 카드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창업 생각도 했고, 고등학교 동아리 생각도 했다. 문득 캠퍼스 전경을 보고 싶어, 한 번도 가 보지 않았던 정문 근처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은 예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온갖 기계설비들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비어냈기에 채울 준비가 되었던 것일까? 기계 설비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방사능물질을 다루는 기계도 보았다. 난간에 기대어 학교 주변을 둘러보기도 하였다. 학교 뒤쪽에 수없이 넓은 주택촌이 있던 것은 그 날 처음 안 사실이었다. 평소의 바쁜 걸음, 앞만 보는 내 습관, 더불어 쉴 새 없이 울리는 스마트폰을 바라봤던 나의 일상에는 없던 것들이었다.


 

 옥상을 내려가려고 하자 동기 한 명이 올라왔다. 반갑게 인사하고 얼마 있지 않아, 다른 동기들 세 명도 만날 수 있었다.  언제부턴가 예상치 못한 이를 만나는 일이 드물어졌다. 다들 카톡으로 약속을 잡았고, 다른 이가 어디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었으니까. 그랬기에 생각치 못했던 사람을 만나는 짜릿한 기분도 느낄 일이 없어졌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어릴 적의 기분이 생각났다.


 

 아는 동기 누나가 짜장면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카드 지갑은 놓고 오지 않았다고 했다. 짜장면을 서둘러 먹고 강의실로 올라가자, 어느 새 1시간 30분이 지나가 있었다. 멍을 오래 때리지는 못했지만, 색다른 경험이었다. 이런 게 내가 기대했던 진정한 대학 수업인 듯 했다.


 다른 동기 몇 명이 늦게 도착했다. 옛날이었으면 어디쯤이냐 문자를 보내 알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못해 답답한 기분이었다. 핸드폰, 스마트폰이 생기고 난 뒤로, 약속을 중요시 여기지 못하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같았으면 한 번 지킨 약속은 깰래야 깰 수도 없었지만, 요즘에는 다른 약속이 생기면 메시지 한 통으로 기존 약속을 파토내거나 미룰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삶을 살며 지갑을 버리고, 카드와 돈을 집에 놓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스마트폰이 1시간만 방전되도 연락을 받지 못해 큰일나는 시대이다. 그렇지만 이따금 지갑과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꺼내버리고, 한 두시간 정도는 여유로운 성찰의 삶을 느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P.S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글쓰기는 성찰적 글쓰기의 방법이라고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하지만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도, 생각을 정리하며 주변 동네를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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